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려한 휴가 (문단 편집) == 기타 == * 진압군과 시민군 사이의 교전 장면이 너무 과장되었다는 반론도 있었다. 정확히는 과장과 축소 모두 나타난다. 일단 교전 장면의 연출이 지극히 부실하였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총 몇 발만 쏘고 만다. 특히 엑스트라들이 총 맞고 쓰러지는 연기는 참... 교전 장면이 과장된 것 역시 사실이다. 시민군이 총기로 무장하고 저항하기 시작한 뒤에도, 양상은 어디까지나 계엄군에 의한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지, 대등한 상태에서 양쪽이 '치열한 교전'을 벌인 것은 아니었다. 사망자수는 공식으로 시민165명(+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행방불명자 처리된 65명)[* 당시만 해도 주민등록이 되어있지 않은 '''미등록자'''들이 많았던 시대상을 감안할 때, 비공식적으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갑제]] 조선일보 기자가 꼼꼼히 희생자규모를 파악하면서 미처 살피지 못했던 부분도 바로 이 주민미등록자들의 존재.], 군인 23명, 경찰 4명인데, '''군인 희생자 23명 중 13명은 무전 주파수가 달라 향토사단, 광주 상무대 소속 교도대들과 "오인 교전"을 벌인 끝에'''[* 나주 남평 효천역과 광주 말바우 시장에서 이뤄졌다.] 죽은 경우이다. 그리고 숨진 시민들이 전부 시민군이었던 것이 아니라, 우연히 지나가다가 혹은 그 자리에 있다가 폭력을 당해 희생된 사람이 많았다. 장애인, 어린이, 청소년 등. 심지어 임신부가 조준사격을 당해 사망한 끔찍한 일도 있었다. 자료만 놓고 봐도 '치열한 교전' 은 절대 아니다. 정작 실제 사건을 경험한 광주 시민들은 '''"영화보다 더 끔찍하고 잔인했다"'''는 평이 우세. [[광주 학살]] 항목을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 현대사의 비극임에도, 일부에서는 여전히 예민한 이슈인 탓에 개봉 전/상영 중에 걸쳐 이런저런 논란이 많았다. 모 단체에서는 영화의 왜곡을 들어 소송을 준비한다는 [[http://news.search.naver.com/search.naver?ie=utf8&se=0&where=news&query=%EC%A0%84%EC%82%AC%EB%AA%A8+%ED%99%94%EB%A0%A4%ED%95%9C+%ED%9C%B4%EA%B0%80+%EC%86%8C%EC%86%A1&sm=tab_pge&sort=0&photo=0&field=0&reporter_article=&pd=0&ds=&de=&sim=0&docid=&mynews=0&start=1|기사들도 나왔다.]] 관련된 후속 기사들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냥 별일 없이 끝난 듯. *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스태프들이 엑스트라로 참여하기도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극장 씬. 김상경 뒤에 앉아 있는 사람은 이준기의 매니저였다고 한다. 그 외에 매니저들이 참여한 장면이 여럿이다. 또 시민군 교육 장면에서 폼잡고 앉아 있다가 흥수에게 "선글라스를 벗으라"며 한 소리 듣자 바로 꼬리 내리고 벗는 사람의 정체는 까메오 출연한 '''감독'''이다. * 실제 자료 사진들을 구도에 많이 활용했다. 예를 들어 18일 [[전남대]] 정문 앞에서 군인들이 학생들에게 달려드는 장면, 관이 안치된 상무관 장면 등. * [[호남 지방]]에서는 상영 중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특히 중, 장년 층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으며, 작중에서 본 사건을 광주 '폭동'이라고 부르는 [[언플]] [[왜곡]]보도[* 실제 그 당시 방영되었던 뉴스 영상이다. 그러나 리포터 목소리는 성우비를 아끼기 위해 김 대위 역의 엄효섭이 맡았다고 한다.]가 나오는 장면이 나올 때에는 욕설이 나오기도 했다고. 반면 주인공 민우가 계엄군에게 잡혔다가 탈출하는 씬[*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그 장면. 하필 그때 스턴트맨이 다리에서 쥐가 나는 바람에 큰일 날 뻔하는 등, 고생을 많이 한 장면이라고 한다.]에서는 극장에서 노인 관객들로부터 박수 갈채와 "잘 한다!"하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독재 권력에 의한 일방적인 폭력으로 200여명의 사망자와 3천 명 이상의 부상자가 나온 이 사건을 (개봉 당시 기준)불과 27년 전 직접 경험한 이들의 이런 반응은 절대 지나친 것이 아니다. *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도 만들어졌다. * 영화가 한창 상영되던 당시에 군대에서 이 영화를 휴가 기간에는 보지 말 것과 이미 본 사람들의 수를 파악하는 행위가 곳곳에서 있었다. 그리고 이미 영화를 본 사람들은 따로 [[정신교육]]을 받았다. 군은 또한 "지휘관급 10여명에게만 총기를 지급하였으며, 영화의 총기 발포 사실은 허위"라는 내용의 특별 --허위--정신교육자료를 일선 부대에 배포하였다.[* 이 지시가 일부 부대에만 내려진 건지 아니면 육/해/공군본부나 국방부에서 내려온 건지는 확인이 필요할 듯 하다. 몇몇 부대에서는 이런 지시 사항을 받은 적이 없는 부대도 있던지라.][* 2007년 개봉 당시 3X사단 정비대에서는 H모 준위에 의해 이러한 지시사항이 병사들에게 확실하게 하달되었다.] 차라리 이렇게 관람을 강제로 금지하는 것보다는 당시 유연한 판단을 보여준 육군 [[제31보병사단]][[사단장|장]]이었던 [[정웅]] [[장군]][* 현장에서 시위 학생 및 시민들의 얘기를 경청하여 상황을 파악한 후, 자리를 이탈. 명령권자인 사단장 부재 등의 사유로 31사단은 시민들과 별다른 충돌 없이 복귀할 수 있었다. 공수부대에게도 행동을 자제하라고 명령했으나 이들이 명령에 따르지 않아 않아 제지에 실패했다. 8년 후 광주 시민의 지지를 얻어 국회의원으로 선출된다.(91.5%의 압도적인 득표율이었다고 한다.)][* 키가 작고 용모가 볼품없었다고 하며, 일부 세력에게 "진압군 대장"으로까지 음해되기도 했다. 하지만, 민초들에 의해 그 공덕이 끊임없이 "구전"되었으며, [[부마항쟁]] 때의 [[박구일]] 해병대 7연대장과 더불어 "민중들"에게 인격자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을 재조명하는게 더 나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 <화려한 휴가>를 촬영한 세트장은 [[광주광역시]]의 [[광주과학기술원]] 뒷편의 공터에 있었다(정확히는 '은혜학교' 뒷편).[* 물론 촬영할 당시에도 전남도청 건물과 [[금남로]]는 온전히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인 만큼 어느덧 금남로도 그 때와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재현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소재를 다뤘던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은 촬영 당시의 금남로에서 그대로 촬영했다. 응?] 한동안에는 80년대 당시의 5.18 세트를 잘 재현해 놓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일부 파손되었을 때에도 복구/재개장 하는 등 관리가 잘 되는 듯 싶더니, 어느새 방치된 상태로 버려졌고, 태풍 피해로 인해 세트장 일부가 파손되었을 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 폐허처럼 버려졌다. 결국은 광주과학기술원의 부지를 넓히거나 확장으로 인하여 오래 전에 폐쇄하였다. 다만 해당 부지가 첨단과학단지 부지에 있었던 만큼, 추후 다른 용도로 쓰여야 될 부지이기는 하였다. 2017년 현재 이 부지 일부분에 광주과학기술원이 확장하였고, 광주 [[외국인 학교]][* 참고로 이 학교의 설립자가 다름아닌 [[하일(방송인)|로버트 할리]]이다!]가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나머지 부분은 아직 공터로 남아있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를 찍은 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세트장에 대한 인식이 다시 제고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촬영에 쓰인 차량들[* 포니, 복사 트럭, 피아트 장갑차, 새한 버스, 군용 록스타 등]은 [[안면도]]의 백사장에 버려진 것으로 보인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eosancom&logNo=100102680039|#]][* 그나마 포니는 2012년경 누군가가 리스토어를 위해 인수하였으나 나머지 차들의 행방은 불명이다.] * 세트가 아닌 실제 장소에서 찍은 장면은 대부분 [[군산시]], [[전주시]]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80년 당시의 풍경이 남아 있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고. 예외적으로 상무관[* 해방 기간 동안 희생자들의 관을 안치했던 곳]과 도청 장면[* TV에서 왜곡 보도가 나오는 부분부터 시작해 김 신부가 뉴욕타임스를 들고 오고 미국 얘기를 나누는 장면]은 실내 장면이고 해서 '''실제 장소'''에서 찍었다. 제작진들의 감회가 남달랐다고. 실제로 옛날에 이곳에서 극중 인물들과 유사한 대화를 나누고 고민들을 하고 했을 테니까 말이다. 김상경이 코멘터리에서 실제 그분들이 하늘에서 보고 있다면 '어, 이 사람들 우리가 했던 거 하네?'하면서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라고 말하기도 했다. * 시민군에 동참하는 고등학생 역으로 [[푸른거탑]]의 [[백봉기]]가 출연했다. *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김상경]]은 특전사 출신이다.[* 공교롭게도 복무했던 부대가 '''[[5.18 민주화운동]]을 진압했던 부대'''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김상경이 <화려한 휴가>에 특전사 역으로 출연했다"는 엉뚱한 정보가 퍼지기도 했다.[* 실제로 김상경은 극중에서 진압군의 충에 맞아 사망한다.] * 인봉 역으로 출연했던 [[박철민]]은 실제로도 [[광주광역시]] 출신이며 '''[[5.18 민주화운동]]을 눈앞에서 지켜보고 경험한 간접적 피해자'''다. 5.18 당시 박철민은 중학생이었고 광주 모 학교의 선생님이던 그의 아버지가 길거리에서 계엄군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 박신애 역의 [[이요원]]과 김상원 대위 역의 [[엄효섭]]은 2년 후 [[MBC]] 드라마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에서 재회했다. * 최순기 준장 역의 [[권태원]]과 유태웅 상병 역의 [[김철기]]는 5년 후 [[MBC]]의 사극 [[무신(드라마)|무신]]에서 재회했으며 인봉 역의 [[박철민]]과는 이듬해 [[구암 허준]]에서 재회했다. * [[중국]]에서는 개봉불가 판정을 받았다. 물론 중국인 민주화 운동가들은 [[코렁탕|각오를 하고]] [[불법 다운로드]]해서 본다고 한다. * 이 영화가 개봉하고 10년 뒤인 2017년 8월,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삼은 영화 '''<[[택시운전사]]>'''가 개봉하여 흥행에 성공하였다. * 연출이나 일부 재현에서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있으나 이와 별개로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루었다는 이유로 근거 없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극우 성향 네티즌들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왜곡/무장폭동설]]을 거론하며 이 영화가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며 [[일베저장소]]와 같은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아예 김상경이 사망하는 마지막 장면을 따와서 광주 학살의 피해자들을 조롱하는데 쓰는 경우도 있다. * 2017년에 [[이명박 정부]] 때 작성된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공개되었는데, 이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이준기]]를 비롯한 여러 배우가 명단에 올랐다. 특히 이준기는 군입대후 연예사병으로 혹사를 받았다는 의혹이 있다. * 이 영화가 개봉된 시기가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몇몇 정치인들이 이 영화를 관람하기도 했다. 심지어 '''[[박근혜]]'''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이 9시 뉴스를 타기도 했다. * [[홍콩 민주화 운동]]과 [[미얀마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택시운전사]], [[1987(영화)|1987]]와 함께 재조명을 받았다. * 등장인물 거의 전원이 사망해서 제목과 엔딩이 매우 역설적이다.[* 강민우와 박신애의 결혼식 사진 장면에서, 하객들도 강민우도 웃고 기뻐하는 가운데 박신애는 죽은 사람처럼 계속 무표정이다. 다만 그녀 주변에서 미소짓는 이들은 이전에 전부 사망했음을 고려하면,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처럼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신애의 고통을 표현하는 장면일수도 있다. 게다가 사진이 찍힌 세상이 저승이라면, 저승에서 살아있는 자는 이승에선 죽은 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